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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기왕 조왕
피임연구 피임기술의 발달은 오늘날까지 성 관념이 변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1908년에 가브리엘 지르는 ‘즈르주 알디’라는 필명으로 [임신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96쪽짜리 지침서를 출판했다. 여기에는 그 당시 알려진 피임법을 소개했으며, 여성의 자유신장과 성을 향유할 권리를 강조하였다. 이 밖에도 여성들은 피임약이라고 생각되던 약초(헨루더,호밀의 보리각 등)를 달여 마시거나 혹은 존데(철사모양의 기구)를 사용하여 직접 낙태를 시도했다. 어쨌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수많은 피임 방법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피임법은 실제로 효과를 보았으며,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 출생률이 저하되기까지 했다. 이제 여성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자위행위 연구 자위행위에 관한 연구도 다양하게 등장했는 바, 이전에는 자위를 아주 부정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어,1642년에 시니발디(Sinibaldi)는 {인류발생론}에서 자위가 변비, 꼽추,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2백년 후 안식일 재림교파의 앨렌 화이트(Ellen White)는 자위가 백치나 앉은뱅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의학 전문가들도 자위로 인하여 눈이 멀고 간질병에 걸릴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자위를 일종의 ‘낭비’로 간주하거나 정신착란 증세로 보았다. 그리고 자위가 성범죄나 성적일탈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증거로서 성범죄자들이 대다수 자위를 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성의 정신병리학]을 출간한 리처드 크라프트..
근대 사회의 성문화-절대왕정시대 역사속의 성 절대왕정시대의 국왕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성의 향연에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리적이고 명석한 왕으로 알려진 앙리4세도 프랑스 왕조 중 가장 호색한 중의 한 사람으로서 58명의 첩을 거느렸다. 그는 '크레에브'라는 여성을 사모했으나 앙이 1세와 결혼하려 하자 약혼중에 있는 그녀를 강간했다. 이후 크레에브가 결혼한지 2년만에 사망하자,절망한 나머지 동성애에 빠졌다. 앙리 3세도 미소년들을 궁정으로 끌어들여 동성애 향연을 벌이는 등 남녀 가리지 않고 성행위에 탐닉했다. 루이 14세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색한으로서,베르사유 궁전에는 1만 명의 남녀가 어느 것에서나 왕에게 봉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셋째 아들인 루이 15세는..
르네상스기에도 스와핑이 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성문제 중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스와핑(swapping),즉 부부나 연인의 교환섹스도 실상 고대나 중세 시대에도 존재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통속작품인[데카메론]은 7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이 돌아가면서 열흘에 걸쳐 쏟아내는 100개의 이야기로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성풍조를 내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부교환섹스에 관한 일화는 그 시대의 성관념이 얼마나 개방적(?)인지를 짐작케 한다. 시에나의 거리에 사는 '스피네로초'와 '제파지'두 친구는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우며,이들은 각기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스피네로초는 제파디의 아내와 동침했으며, 이를 눈치챈 친구가 아내를 위협하여 스피네로초를 궤짝에 가두도록 시켰다..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이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는 흔히 '미의 여신'으로 불리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만큼은 그와 같이 인식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아프로디테는 성욕에 불타고 쾌락을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라도 벌일 수 있는 '섹스의 여신'일 뿐이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세 여신의 미의 경쟁을 보자. 여신의 우두머리 헤라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도 아프로디테 못지 않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세 여신의 아름다움을 판정한 파리스도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그녀가 미인을 보내준다는 제안에 혹해서였다. 세 여신 말고도 미인으로 불리는 여신들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어째서 아프로디테만이 유독 미인의 대명사가 될까? 그건 그녀만이 다른 여성에게 흔히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