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기왕 조왕
피임연구 본문
피임연구
피임기술의 발달은 오늘날까지 성 관념이 변화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1908년에 가브리엘 지르는 ‘즈르주 알디’라는 필명으로 [임신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96쪽짜리 지침서를 출판했다. 여기에는 그 당시 알려진 피임법을 소개했으며, 여성의 자유신장과 성을 향유할 권리를 강조하였다. 이 밖에도 여성들은 피임약이라고 생각되던 약초(헨루더,호밀의 보리각 등)를 달여 마시거나 혹은 존데(철사모양의 기구)를 사용하여 직접 낙태를 시도했다. 어쨌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수많은 피임 방법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피임법은 실제로 효과를 보았으며,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 출생률이 저하되기까지 했다.
이제 여성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했으며,섹스에 대해 자유로워졌다. 사실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젊은 여성들의 처녀성을 지키고, 기혼 여성의 간통을 억제케 했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의 여성 운동 내부에는 ‘출산은 함정이고,아이는 불리한 조건’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 당시 여성의 성적,사회적,정치적 해방을 주장한 의사이자 여성운동가인 마들레느 페르티에(Madelenine Pelletier)도 여성이 안고 있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막중한 부담을 시정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후 1960년대에는 먹는 피임약이 등장하여 여성의 위치에 일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기존의 피임법보다 간편하고 안전한 이 약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임신의 공포’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윌리엄 매스터스(William Masters)와 버지니아 존슨(Virginia Johnson)은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방식으로 성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는 성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성기능장애 치료 연구로서,특히 그 치료법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한때 부부였던 두 사람은 18세기에서 89세까지 수백 명(남성 312명과 여성 382명)을 실험대상으로 하여,성반응시의 혈압,체온,심장박동,호흡,오르가슴을 분석하였다. 이후 11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모아서[인간의 성반응](Humman Sexual Reponse,1966)을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성행위과정의 생리학적 변화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생활상식왕 > 성과 결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이 아니다 (0) | 2015.03.14 |
---|---|
내남편 발기불능일때 특효약 (0) | 2015.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