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활상식왕/개방vs금기의 성

근대 사회의 성문화-절대왕정시대

약지공쥬^^ 2015. 3. 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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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의 성문화-절대왕정시대 역사속의 성

 

절대왕정시대의 국왕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성의 향연에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리적이고 명석한 왕으로 알려진 앙리4세도 프랑스 왕조 중 가장 호색한 중의 한 사람으로서 58명의 첩을 거느렸다. 그는 '크레에브'라는 여성을 사모했으나 앙이 1세와 결혼하려 하자 약혼중에 있는 그녀를 강간했다. 이후 크레에브가 결혼한지 2년만에 사망하자,절망한 나머지 동성애에 빠졌다. 앙리 3세도 미소년들을 궁정으로 끌어들여 동성애 향연을 벌이는 등 남녀 가리지 않고 성행위에 탐닉했다. 루이 14세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색한으로서,베르사유 궁전에는 1만 명의 남녀가 어느 것에서나 왕에게 봉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셋째 아들인 루이 15세는 아버지에 비해 정치가로서의 능력은 한참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오직 난잡한 성행위에만 몰두함으로써,음탕한 습성만큼은 아버지 이상이라고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무려 10명의 아이를 낞은 왕비를 체쳐두고 수많은 애첩과 향락을 일삼았는데,여기에는 귀부인과 평민 심지어 매춘부까지 포함되었다. 이제 귀족들은 출세의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앞 다투어 국왕에게 성상납을 할 방법을 찾아 헤맸으며, 그 대상에는 자신의 아내마저 포함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녹원'에는 거의 전라의 미녇르이 산책하는 국왕의 부름을 기다렸으며, 밤마다 여러명의 처녀들이 왕의 수청을 받들었다. 그 처녀들이 임신하면 얼마의 돈을 쥐어 주고 궁전 밖으로 내모는 등, 루이 15세의 음탕함은 부르봉왕조 중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절대왕정시대의 여왕 또한 남성편력을 관시하였는 바,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2세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들 수 있다

두 여왕은 결혼은 하지 않은 채 각기 정부를 두고서 마음껏 성적 쾌락을 향유하였다. 루이 16세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국왕 몰래 많은 정부들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소문의 진위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으나. 개연성만은 충분했다. 왜냐하면 루이 16세는 성적으로 거의 무능했던 반면, 나이 열여섯에 시집온 활달한 성격의 왕비는 성적 불만을 연회를 주관하는 것으로 해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회 중에는 참석한 귀족들 간에 그룹섹스를 벌이는 것도 적지 아니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말을 실천하듯 난교파티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연회를 주관한 이가 다름아닌 왕비라는 점에서,그녀는 실제 성행위를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의심받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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